📝 [국어 3번 문항 제시문]
문학 - 안수길 - 제3 인간형 소설 속 인물 유형 분류
서로 말로 하는 수작을 보아서는 지극히 친밀하고 흉허물 없는 사이인 것 같은데, 어쩌면 하나는 저렇게 풍부하고 기름이 흐르고, 하나는 저렇게도 몰골이 초라할까? 둘 사이의 주고받는 대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외면의 현격한 차이가 마치 만화의 인물이 튀어나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듯했을 것이다. 동료들의 호기심은이 점에 있는 것은 아닐까?
사실, ‘석’도 몸집과 차림차림이 얼른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변해 버린 작가(作家) ‘조운’을 대할 때, 경이의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.
역지로 전에 하던 버릇대로 농조로 말을 끄집어는 냈으나, 그와 대조하여 석 자신의 몰골이 얼마나 초라할까가 마음에 걸려 미상불 주눅이 잡히기까지 하였다.
“아니, 자네도 이렇게 몸이 나고,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, 이렇게 훌륭한 모자를 쓰고, 또 고급 차로 출입을 하고 할 때가 있었던가? 세상은 변하고 볼 일일세.”
“기적 같단 말이지?”
사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.
[중략 부분 줄거리] 석은 오랜만에 만난 조운과 식사를 하고, 그 자리에서 미이가 조운에게 보낸 검정 넥타이를 보게 된다. 검정 넥타이는 조운이 6.25 전쟁 전에 일상적으로 매던 것으로 미이가 속세에 초연했던 당시의 조운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물건이다. 전쟁 후 부유한 사업가가 된 조운은 부산에서 다시 만난 미이와의 일화를 들려준다.
나는 다방을 하나 차려 줄 것에 생각이 미치었네. 이것이면 내 힘으로 자금 유통도 되고, ‘미이’ 의 명랑성도 센스도 살릴 수 있고, 수입 면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네. 이 계획을 말했더니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듣고, 얼굴에 희망의 불그레한 홍조까지 떠올리던 ‘미이’였으나, 다음날 오 일간의 생각할 여유를 달라는 것이었었네. 더 생각할 여지도 없는 일일 터인데 망설이는 것이 수상쩍었으나, 그러마 하고 나는 동아 극장 옆에 있는, 마침 물려주겠다는 다방 하나를 넘겨 맡기로 이야기가다 되었었네. 그 닷새 되는 날이 오늘이고, 정한 시간에 연락 장소인 다방엘 갔더니, 레지가 내민 것이 종이 꾸러미였었네. 펴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. 다른 길과 달라 간호 장교이고 보니, 생활 방편을 위한 것이 아님이 대뜸 짐작이 갔고, 더욱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 검정 넥타이였었네. 그러면 ‘미이’가 첫날 다방에서 ‘사명 운운’했던 것은 그 길을 말함이었던가? 나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네. 검정 넥타이를 들고 나는 비로소 삼 년 동안이나 내가 정신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것을 뼈아프게 느끼었네. ‘미이’가 말하는 그 사명을 찾는 길, 사명을 다하는 일을 나는 사변이라는 외적인 격동 때문에 포기하고 만 것일세. 가장 잘 생각하는 체하던 나는 가장 바보같이 생각했고, 부박하다고 세상을 모른다고 여기었던 ‘미이’는 사변에서 키워졌고 굳세어졌고,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일세.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굴러떨어지는 듯했네. 구르면서 걷어잡으려고 한 것이 친구의 구원이었네. 자네를 찾은 것은이 때문일세…….
‘조운’의 긴 이야기를 듣고 난 ‘석’은, 여기 올 때까지 그렇게 호기심을 끌었고 기대의 대상이 되었던 그에게 이젠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않았다. 더욱이 그의 고민 같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. ‘석’의 뇌와 마음은 강렬한 ‘미이’의 인상으로 꽉 차 있었다.
그리고 ‘미이’가 ‘조운’의 마음에 던져 준 충격 이상의 충격을 ‘석’도 받지 않을 수 없었다. 안주가 좋아서만이 아니었다. 그 강렬한 배갈도 ‘석’을 취하게 하지 못했다. 역시 마음이 ‘미이’로 말미암아 팽팽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. ‘조운’의 차로 집에 돌아와서도 ‘석’은 큰소리를 탕탕 치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. 얌전하게 자리에 들어가 가족들을 들볶지 않았다. 그의 엄숙한 태도에 가족들은 또 술을 먹었다고 잔소리를 할 수 없었다. 자리에 드러누워 그는 생각하였다.
……… (중략) ………
눈을 감았다 뜨며 ‘석’은 중얼거렸다.
“사명을 포기치도 그것에 충실치도 못하고 말라 가는 나는? 나도 사변이 빚어낸 한 타입이라고 할까?”
- 안수길, 「제3 인간형」